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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월 16일에 다른 곳에 쓴 글입니다. 블로그 이사하면서 옮깁니다.)


지난번에는 간단하게 러시아, 그리고 푸틴의 입장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를 정리해봤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나토 (NATO)의 동진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따라서 군사작전을 불사하면서라도 우크라이나를 분쟁지역화해서 자신의 핵심 이익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점.

그렇다면 유럽은 우크라이나를 끝까지 지원하면서 러시아와의 전면전까지 불사할 각오가 있을까?

현재 유럽 연합의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는 같은 입장일까?

미국을 제외하면 나토 (NATO) 군사력의 비중이 제일 큰 영국은?

폴란드, 헝가리 및 다른 동유럽 국가들은?

그리고 중립의 가까운 북유럽 국가들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은 한목소리를 낼 수가 없다.

설사 러시아가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다고 해도 이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을 듯하다.

이유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

열쇳말은 바로 에너지와 안보.

1.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유럽의 탄소에너지 공급

유럽 전체에서 러시아의 탄소에너지 공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전체 유럽 수요의 25% (원유)에서 50%(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유럽의 탄소에너지 러시아 의존도 (FT)

 

물론 의존도는 개별 국가 간 편차가 상당하다.

다음의 그래프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소비하는 천연가스의 40%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공급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가진 독일도 거의 절반 (49%)을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에 의존하고 있고, 2/3 이상 의존하는 나라들도 11개국이나 된다.

유럽 국가별 전체 천연가스 공급 중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 (2020년, Statista)

러시아가 가스 파이프를 통해 공급하는 천연가스의 흐름은 다음 지도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러시아로부터 가까울수록, 그리고 경제 규모에 비례해서 상당 부분 러시아의 가스 공급에 의존하고 있다. (독일, 이태리, 동유럽) 또한 상대적으로 바다를 통해 LNG 수입이 용이할수록, 그리고 러시아로부터 멀리 떨어질수록 의존도가 낮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쳔연가스의 30% 정도가 우크라이나를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를 통한다.

러시아로부터 유럽으로의 천연가스 공급량 (NYT)

지난 3개월간 유럽은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할 경우 (너한테 안 팔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경험 중이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러시아가 지난해 말부터 우크라이나 사태가 심각해짐과 동시에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을 20% 정도 줄인 것을 볼 수 있다. (파란 선)

값싼 러시아 가스가 줄어들자, 유럽은 할 수 없이 바닷길을 이용해서 비싼 액화 가스(LNG) 수입을 늘렸다.

게다가 이때는 하필 겨울 난방수요로 인해 계절적으로 가스 수요가 제일 높은 시점.

수송비가 싼 러시아 천연가스가 대략 전체 유럽 가스 수요의 1/3을 담당

 

이미 줄어든 공급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지정학적 위기감이 고조되자 당연히 천연가스 가격은 다음과 같이 반응했다.

유럽 소비자 물가는 당연히 상승. 실질 소득 감소로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은 팍팍.

유럽 가스 선물 가격 추이 (Refinitiv)

그렇다면 석유는?

역시 러시아의 비중을 무시할 수 없다.

유럽 수요의 약 35% 정도를 러시아 석유 회사 ( = 러시아 정부) 가 담당한다.

유럽 석유 공급 1, 2, 9위가 러시아 회사 (T&E)

 

따라서 지금 유럽이 걱정하는 것은 러시아의 핵탄두가 아니라 (물론 무섭지만 가능성이 매우 희박), 푸틴이 갑자기 가스 밸브를 잠가버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러시아 또한 이를 잘 알고 있다.

지금 미국이나 EU에서 천연가스 공급 다변화를 통해 러시아 의존도를 줄여보려고 하지만 이는 단기간에 해결이 어렵고, 또 LNG 운송비 및 수요 경쟁으로 인해 러시아 가스보다 절대 싸게 구할 수가 없다.

 

2. 안보: 강 건너 불구경이냐 우리 집 앞마당이냐?

약 10년 전 유럽 채무 위기가 한층 고조될 무렵, 유럽은 남과 북으로 갈렸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국가들은 남쪽 나라들의 방만한 재정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태리를 중심으로 한 남유럽 국가들은 북쪽 나라들의 쪼잔함과 깐깐함에 불만이 많았다.

독일 언론에서는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이탈리아 남부의 게으름뱅이들을 구제금융으로 도와야 하는가에 대한 불만이 팽배했고,

그리스 언론에서는 북유럽 국가들이 싼 유로의 혜택을 누리며 흑자를 내고도 돕지 않는 흡혈귀 같다는 풍자가 많았다.

지금은 약간 동서로 갈린 느낌이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서로 전쟁을 하지 않았던 나라들을 찾는 게 불가능하지만,

각각 러시아와의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한다.

독일은 메르켈 총리가 떠난 큰 공백을 숄츠 총리가 전혀 메우지 못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가스 의존도가 높은 나머지, 불필요하게 러시아를 자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녹색 에너지 / 탈원전 국가)

러시아 푸틴 & 독일 숄츠 정상회담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이 4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이 위기를 해결했다는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한다. 독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러시아 에너지 의존도도 낮다. 메르켈의 빈자리를 채우고 유럽의 맏형이 되고 싶는 욕구가 있다. (핵 발전 유럽 1위)

https://www.leparisien.fr/elections/presidentielle/presidentielle-linternational-atout-ou-boulet-pour-emmanuel-macron-14-02-2022-HTALYTILANC6ZMXIYCI3QNIDII.php

영국은 브렉시트로 좁아진 입지를 군사 안보 이슈로 돌파, 유럽 및 NATO 내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높이고 싶다. 더불어 추가 브렉시트 협상에서 유럽으로부터 양보도 얻고 싶다. 게다가 존슨 총리는 최근 파티 게이트 (자가격리 기간에 술판을 벌임)로 정치적 위기.

동유럽 국가들은 구 소련과의 악몽 + 나치로부터의 악몽이라는 더블 트라우마가 있어서 독일도 싫고 러시아도 싫은데, 최근 폴란드나 헝가리 같은 주요 국가들의 정부는 강한 민족주의 + 우파 성향.

발트 3국은 정말 러시아 앞마당이고 국민 중에 러시아 출신 비중도 높아서 나토 (NATO)라는 경찰에 의지할 수밖에 없지만, 옆집 깡패형이 더 무서운 상황.. 말 그대로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스웨덴/핀란드는 중립국이지만 가끔 나토 (NATO) 가입을 고민하기도 함. 하지만 그럴 경우 러시아의 강경 대응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기에 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중립 지위를 유지할 듯.

이런 각국의 에너지 의존도, 군사력, 러시아와의 거리를 고려하면 대강 각국의 입장이 나온다. 아래 표는 내가 정말 상황을 최대한 단순화해서 정리해 본 유럽 각국이 러시아를 대하는 방식. 지금까지는 대충 이 범위에서 러시아 정책 입장이 나오고 있다.

 
천연가스
러시아의존도
안보 이슈/
군사력
러시아간
거리
대 러시아 정책
독일
50%
중간
중간
대화로 풀자
프랑스
25%
살짝 강경
유럽 내 군사력 리더
중간
살짝 강경 + 대화
영국
0%
초강경
유럽 내 군사력 리더
많이 멀다
초강경
동유럽 국가들
평균 60% 이상
무섭지만 강경
가까움
겉으로는 강경
발트 3국
90% 이상
매우 무섭지만 강경
소국
코앞
무섭지만 강경
스웨덴,
핀란드
핀란드
90% 이상
중립국
가까움
중립

따라서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전면적인 군사 작전에 돌입하거나 소요사태가 일어난다고 해도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을 테고 나토 (NATO) 개입 군사 작전의 최종 결심은 결국 미국의 몫이다.

근데 유럽의 강대국에게 우크라이나는 강 건너 불구경인데... (영국은 바다 건너!)

러시아 국경에 가까운 소국들에게는 옆집에 불이 난 격이고... (우리 집도 타면 어쩌나!)

나토의 핵심인 미국이 보기에 우크라이나는 저 먼 대서양 바다 건너 불구경이라는 점.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우크라이나의 위치는커녕 존재 자체도 모를 텐데...?)

더구나 재래핵무기 전력이 막강한 러시아를 상대로의 확전은 미국으로서도 피해야 한다.

결국 서방의 직접적인 군사력 개입은 상당히 가능성이 희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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