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8일, 70년 간 영국 왕위를 지켜 온 현대사의 산 증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 (Queen Elizabeth II)이 서거했다.
지난봄에 즉위 70주년 기념행사를 목격한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
2022.05.29 - [유럽] -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70주년 기념 퍼레이드
이 글에서 짧게 여왕의 사망과 앞으로 일어날 변화, 그리고 지금 영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간략하게 정리한다.
1. 사망 발표 및 추모 기간 시작
시작은 12시 반을 조금 지나 나온 다음의 짧은 발표부터였다.
보통 여왕의 건강에 대한 정보는 전혀 공개하지 않는 버킹엄궁에서 8일 오후에 나온 짧은 성명서. 고령의 여왕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의료진이 면밀히 관찰 중이라는 짧은 글.
https://www.royal.uk/statement-buckingham-palace
그와 동시에 의회에서 정책 토론 중이던 여당 신임 총리와 야당 대표에게도 여왕이 위급하다는 전갈이 전해지고, BBC news는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여왕이 여름휴가차 머무는 Scoltland의 Balmoral castle, 그리고 속속 그곳으로 이동 중인 직계 왕족들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했다.
https://www.bbc.co.uk/news/uk-62836057
그리고 첫 성명이 나온 지 약 6시간 후인 저녁 6시 반 즈음, 또 하나의 짧은 성명이 나왔다. 여왕이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짧은 한 줄이 전부였다. 그렇게 영국 역사상 가장 재위 기간이 길었던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두 번째로 긴) 엘리자베스 2세 시대가 막을 내렸다.
https://www.royal.uk/announcement-death-queen
BBC는 모든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다음의 약 2분짜리 짧은 확인 보도를 냈다.
살짝 울컥한 듯한 진행자의 목소리, God save the queen이라는 영국 국가와 함께.
이어진 찰스 왕세자로의 왕위 승계 및 왕으로서의 첫 공식 발표는 모친이자 여왕에 대한 짧은 추모.
https://www.royal.uk/statement-king-following-death-queen
그는 이제 찰스 3세로 불리게 된다.
https://www.bbc.co.uk/news/uk-59135132
그렇게 Operation London Bridge는 시작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London_Bridge
https://namu.wiki/w/%EC%9C%A0%EB%8B%88%EC%BD%98%20%EC%9E%91%EC%A0%84
9월 9일부터 영국은 열흘 간의 공식 추모 기간에 들어갔다.
다음을 통해 영국 정부는 공식 추모와 관한 안내를 발표했다.
각종 정부 행사들은 연기되었고, 여러 놀이 시설 등도 임시 휴장 했다. 프로 축구와 같은 스포츠 일정도 연기되었고, 예고되어 있던 노동 단체들의 파업 또한 미뤄졌다.
심지어 다음 주로 예정되어 있던 영국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발표 또한 일주일 연기되었다.
https://www.bankofengland.co.uk/news/2022/september/mpc-announcement-postponed
이제 영국은 모든 기관들이 조기를 달고, 조용히 추모하는 분위기다. 아마도 국장은 열흘 후인 9/19 즈음에 열릴 듯하고, 만약 장례일이 평일로 정해질 경우 임시 공휴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
장례 일정에 대한 BBC의 안내 기사:
https://www.bbc.co.uk/news/uk-60617519
앞으로 열흘 간의 일정을 정리한 Guardian 기사:
그리고 오늘은 영국 각지에서 여왕의 96세를 상징하는 예포 행사도 진행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MhpJ53HrSo
2.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상징성 및 향후 변화
겨우 런던에서 15년째 살고 있는 내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영국 사회와 역사에서 가지는 의미와 상징을 모두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들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뿐이다.
2.1.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삶 및 재임 기간 자체가 20세기 및 21세기 현대사 그 자체
간략히 그녀의 삶과 당시 주요 역사적 사건들을 적어본다.
1926년: 탄생 (당시 한국: 조선의 마지막 임금 순종 승하 및 6.10 만세운동)
1937년: 11세에 아버지 조지 6세 즉위 (당시 한국: 일제 강점기 치하)
1939년: 영국이 독일에 선전 포고. 2차 세계 대전 확전 국면
1945년: 19세에 운전 병과로 영국군 입대 (당시 한국: 일제 강점 말기, 광복 및 38선 미소 분단)
1947년: 21세에 필립 공과 결혼
1948년: 아들 찰스 (현 찰스 3세 왕) 출산 (당시 한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 취임)
1952년: 아버지 조지 6세 사망, 엘리자베스 2세 왕위 승계 (당시 한국: 6.25 전시)
1953년: 대관식을 통해 정식 왕위에 오름. 최초의 대관식 TV 중계 (당시 한국: 6.25 전쟁 휴전)
1969년: 아들 찰스(현 찰스 3세 왕), 공식 후계자 지명 (당시 한국: 박정희 정권 3선 개헌 / 아폴로 11호 달 착륙)
1977년: 여왕 즉위 25주년 (Silver Jubilee) 행사 (당시 한국: 의료보험제도 시작)
1981년: 아들 찰스(현 찰스 3세 왕), 다이애나 공주와 결혼 (당시 한국: 전두환 대통령 당선)
1982년: 다이애나 왕비, 윌리엄 왕자 (현 왕권 승계 1순위) 출산 (당시 한국:야간 통행금지 해제)
1992년: 찰스 왕자와 다이애나 왕비 이혼, 영국 ERM 외환 위기 (당시 한국: 김영삼 대통령 당선,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1994년: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채널 터널 완공 (당시 한국: 성수대교 붕괴 참사)
1997년: 다이애나 왕비,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 (당시 한국: IMF 외환위기)
2005년: 아들 찰스(현 찰스 3세 왕), 카밀라와 재혼
2011년: 손주 윌리엄 왕자 (현 왕권 승계 1순위), 케이트 미들톤과 결혼 (당시 한국: 북한 김정일 사망)
2011년: 아일랜드가 1921년에 독립 후에 아일랜드를 방문한 첫 군주로 기록. 과거 역사에 대해 유감 표명.
2012년: 여왕 즉위 60주년 (Silver Jubilee) 행사, 런던 올림픽 개최 (당시 한국: 박근혜 대통령 당선)
2013년: 영국 왕위 승계에 관한 법 개정 (성별과 무관하게 장자/장녀 왕위 승계 가능, 가톨릭 신자도 승계 가능)
2013년: 손주 윌리엄 왕자 (현 왕권 승계 1순위)의 아들, 조지 왕자 탄생 (현 왕권 승계 2순위)
2015년: 손주 윌리엄 왕자 (현 왕권 승계 1순위)의 딸, 샬롯 공주 탄생 (현 왕권 승계 3순위)
2015년: 엘리자베스 2세, 빅토리아 여왕을 넘어서 가장 오래 왕위를 유지한 여왕으로 기록
2016년: 90세 생일. 영국 국민투표로 브렉시트 찬성 (당시 한국: 박근혜 대통령 탄핵)
2020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흔치 않은 (68년 재위 중 다섯 번째) 대국민 담화 발표 (코로나 관련)
2021년: 남편 필립 공, 99세의 나이로 사망
2022년 9월 6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자신의 재위 기간 중 15번째 영국 총리 임명, 마지막 공식 행사가 됨
2022년 9월 8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 96세의 나이로 사망
위에 간략히 적었을 뿐이지만, 1950년대 세계 2차 대전 직후부터 포틀랜드 전쟁, 다이애나 왕비의 이혼과 사망 등의 여러 왕실 스캔들, 수 차례 경제 위기, 브렉시트, 코로나바이러스 등등, 엘리자베스 2세의 삶은 어쩌면 영국, 좀 더 나아가 서방 중심의 세계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또한 현재 살아 있는 대부분의 영국인에게 '여왕 = 그녀'였고, 왕위를 승계한다는 사건 자체가 모두 생애 처음 겪는 일인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수많은 왕실 관련 스캔들 가운데에서도 흔들림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상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녀 또한 그녀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왕위를 승계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자유로운 삶을 꿈꿨으나 어쩔 수 없이 운명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의 아버지는 왕위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건강을 해치고 세상을 떠나기까지 했으니까...
어쩌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에서 점점 그 영향력을 잃어가던 영국의 20세기 및 21세기 역사에서 사회를 하나로 뭉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했던 여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존재가 사라졌으니, 영국 사회가 느끼는 상실감은 클 수밖에 없다.
아래는 이코노미스트 (The Economist)의 짧은 영상 (숫자로 보는 여왕의 70년)
영국 Sky news에서 만든 17분짜리 부고 동영상
9/9 BBC에서 전한 추모 분위기 스케치 보도 동영상
Tears and tributes for Queen Elizabeth II across the UK - BBC News https://youtu.be/zs1HXlJw70M
아래 몇 가지 관련 기사를 덧붙임:
Queen Elizabeth II: A constant presence in a changing world - BBC News https://youtu.be/xQywJVW0Twc
아래는 몇 가지 부고 기사들:
https://www.bbc.co.uk/news/uk-61605149
https://www.theguardian.com/uk-news/2022/sep/08/queen-elizabeth-ii-obituary
오늘 밤에 St. Paul's 성당에서 있었던 추모식 참석을 위해 우리 사무실 주변에도 많은 인파가 몰렸다.
하지만 일상은 큰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다. 동네 펍에도 주말을 맞아 즐기는 젊은이들도 그대로이고... 왕실과 왕실 전통에 대한 애착의 정도야 사람마다 다 다를 테니까...
나 또한 21세기에 왕실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는 회의적인 생각이 많지만, 영국 왕실이 이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영국 국가도 'God save the Queen'에서 'God save the King'으로 바뀌었고, 앞으로 수많은 화폐 및 우표도 바뀔 것이다. 또한 사회 곳곳에 새겨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문양 또한 찰스 3세 왕으로 교체하리라.
영국사에서 한 시대가 끝났다.
3. 영국이 당면한 도전: Quo vadis, Britannia?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세 가지 주제를 좀 더 깊이 다루겠지만 여기에서는 간략히 짚어 본다.
3.1. 영국 왕실 지속: God will save the reign?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 왕비와의 이혼 및 사망, 앤드류 왕자의 성추문, 해리 왕자와 그의 아내의 왕실 비판 등등 많은 스캔들에 시달려 왔다. 왕실이 지니는 상징성 및 전통을 지키고 싶은 여론도 높지만, 이와 같이 계속 문제가 이어질 경우 왕실 축소 및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80% 가까운 인기를 누려온 반면, 이제 왕이 된 찰스 3세는 40%에도 미치지 못했었고, 후계자 적합 여론 조사에서도 아들인 윌리엄 왕자에게 뒤처지는 상황이었다.
특히 최근 해리 왕자와 메간으로 인해 왕실에 대한 영국 여론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임을 감안하면, 새로운 왕이 대중의 지지와 사랑을 바탕으로 스캔들을 극복하고 왕실의 전통을 이어가야 할 어려운 현실이다.
3.2. 브렉시트 (Brexit)와 통일 영국: Will the United Kingdom remain 'united'?
브렉시트 (Brexit)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유럽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은 현재 당면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뤄지고 임시방편으로 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여론 조사에서도 브렉시트를 후회한다는 의견이 절반을 넘는 모습이다. 유럽은 제2의 브렉시트를 막기 위해서라도,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영국과의 새로운 관계 설정을 최대한 어렵게 가져갈 유인도 있다.
영국의 영어 명칭은 'United Kingdom'은 연합 왕국, 즉 네 개의 왕국의 연합이다.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노던 아일랜드) 하지만 미래에도 이 연합이 유지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독립을 위한 국민 투표를 추진하고 있고, 북아일랜드 또한 여전히 분쟁의 씨앗이 살아 있다. 스코틀랜드는 2023년에 독립을 국민 투표에 부칠 계획이고, 내가 런던에서 만나는 잉글랜드 사람들 또한 '제발 나가버려라.'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았다. 북아일랜드는 최근 브렉시트로 인한 유럽 연합과의 국경 및 관세 문제를 겪고 있기도 하다.
https://www.bbc.co.uk/news/explainers-53724381
따라서 영국이 갈라지는 상황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 현실.
3.3. 고물가와 생활비 위기 (Cost of living crisis): Another winter of discontent?
2022년 전 세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 그중에서도 영국은 선진국들 중에서 가장 높은 두 자릿수 물가상승률을 겪고 있다.
올봄부터 꾸준히 적고 있지만 높아지는 물가로 인한 시민들의 불만은 계속 높아지는 상황.
2022.06.23 - [기관투자노트/경제지표] - 영국 5월 CPI 소비자 물가지수 발표: Summer of discontent?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에너지 가격 동결 등 확대 재정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도 중이다. 이는 아래 그래프와 같이 영국 국채 발행액수를 크게 늘릴 것이고, 이와 같은 부채의 증가는 최근 영국 화폐 가치 하락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 정부 재정 지출이 불가피한 현실이지만, 물가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새로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공존하고 있다. 이미 발표한 재정지줄만 해도 GDP의 5%는 이미 넘긴 수준이고, 10%까지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시장 참가자들도 영국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이미 역사적으로도 1970년대에 영국은 치솟는 물가로 인해 사회 불안이 증가하고, 많은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사회가 마비, 당시 노동당 정부의 붕괴로 이어진 경험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Winter_of_Discontent
따라서 미국과 달리 영국 및 독일과 같은 유럽 국가들은 과거 고물가로 큰 사회적 고통을 치른 역사가 있다.
이렇게 많은 난제를 직면한 영국은, 이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로 인해 변함없는 동상처럼 나라를 지탱해주던 상징을 하나 잃은 셈이다. 영국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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